[공포] 자정, 네가 보고 있어... PC 통신 저주 동호회

박서임 2026-10-19 11:26 조회 4

※ 도시 괴담 각색 : PC 통신 괴담 '자정의 그림자'

[공포] 자정, 네가 보고 있어... PC 통신 저주 동호회

젠장, 그 지겨운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낡은 컴퓨터를 다시 꺼내든 건 순전히 심심함 때문이었다.
먼지 쌓인 본체에 연결된 누런 모니터는 마치 유물 같았지.
대학생이 된 후에도 여전히 뭔가에 쫓기듯 허무한 기분이 들 때면, 나는 그 시절의 향수를 찾아 헤맸어.

삐비빅, 삐이이익, 칙칙폭폭.

다이얼업 모뎀이 연결되는 소리는 마치 과거로 떠나는 기차 소리 같았지.
그 시끄럽고 느려터진 연결음이 왜 그렇게 정겹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한때 내 세계의 전부였던 그 이름들을 다시 마주하니, 왠지 모를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어.

오랜만에 접속한 PC 통신 세상은 여전히 텍스트로 가득했다.
이것저것 게시판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흑마술과 저주 동호회'라는 으스스한 이름의 동호회를 발견했지.
호기심이 발동했어.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날따라 뭔가에 홀린 듯 마우스를 클릭했어.

동호회 게시판은 온갖 음침한 글로 도배되어 있었다.
'죽은 자를 부르는 방법', '원한을 갚는 의식' 같은 말도 안 되는 제목들이 즐비했지.
처음엔 그냥 중2병 걸린 애들이나 할 법한 장난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글들을 읽어 내려갈수록 묘하게 섬뜩한 기분이 들더라.

특히 내 시선을 잡아끈 건 '자정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게시글이었다.
내용은 이랬어. 정확히 자정, 아무도 없는 방에서 PC 통신에 접속한 뒤, 특정 동호회 비밀 게시판에 접속하라는 거야.
그리고 거기에 '그림자여, 나를 보라'는 문구를 입력하면, 너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비밀을 '그림자'가 알려줄 거라고 했어.

그 게시글 마지막에는 경고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림자는 너를 보되, 너는 그림자를 볼 수 없다. 만약 그림자가 너를 탐하면, 너의 삶은 그림자로 뒤덮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 하지만 묘하게 끌렸다.
진짜일까? 아닐 거야. 그런데 만약….

젠장, 내가 미쳤지. 설마 진짜겠어?
그냥 심심풀이로 한번 해보는 거지. 만에 하나라도 진짜면?
그래, 그게 더 재밌을 것 같았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잖아? 스릴이라도 느껴보자.

밤 11시 50분. 방안의 모든 불을 끄고, 오직 모니터 불빛만이 내 얼굴을 창백하게 비췄다.
낡은 컴퓨터의 팬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어. 손에 땀이 흥건했지. 키보드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초조하게 시간을 기다렸어.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온 방안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11시 59분… 50초… 55초… 59초… 그리고 자정.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망설일 틈도 없이, 나는 '흑마술과 저주 동호회'의 비밀 게시판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문구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림자여, 나를 보라.' 엔터 키를 누르자마자, 모니터 화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검은색과 녹색의 깨진 글자들로 뒤덮였어.
삐빅거리는 모뎀 소리는 마치 누군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로 변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화면을 노려봤어.
그리고 그때, 채팅창에 새로운 아이디가 나타났다.

'********'.

알아볼 수 없는 깨진 기호들의 나열.
누가 봐도 정상적인 아이디는 아니었지.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화면 속 글자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어.

'********'…

그 아이디는 마치 나를 비웃는 듯한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그 아이디로부터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너의 비밀… 모두 알고 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아주 어릴 적의 치기 어린 장난 같은 비밀을 떠올렸어.

그걸 어떻게 알았지? 아니, 설마 진짜란 말인가?

나는 손가락이 굳어 아무것도 입력할 수 없었다.
그저 화면만 멍하니 바라봤지. 모뎀 소리는 더욱 기괴하게 변해갔고,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때, 다시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더 구체적이고, 더 섬뜩한 내용이었다.

"너의 책상 밑에 숨겨진… 그 칼… 네가 누구를 죽이고 싶었는지… 내가 다 봤어."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책상 밑에 숨겨진 칼? 내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 칼을 말하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니라… 며칠 전,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친구와 다투고 나서, 몰래 서랍 깊숙이 숨겨뒀던 과도를 말하는 거였다.
그걸 어떻게…?

나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손을 뻗어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려 했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화면이 다시 한번 심하게 일그러지더니, 이번에는 붉은색 글자로 섬뜩한 문구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이제… 네가 나를 볼 시간이다…'

모니터 화면은 붉은 피처럼 번졌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무언가의 형체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차가운 손이 내 어깨를 스치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의자에서 나동그라졌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나는 필사적으로 컴퓨터 전원 코드를 뽑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 화면은 꺼졌고, 방안은 다시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어. 나는 숨을 헐떡이며 벽에 기댔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낡은 컴퓨터를 봉인했다. 아예 벽장 깊숙이 처박아뒀지.
다시는 PC 통신에 접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의 기억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 깨진 글자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섬뜩한 시선….

그 '그림자'는 더 이상 PC 통신 속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밤이 되면, 나는 내 방 한구석, 아니, 내 그림자 속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붉은 눈동자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그 그림자는 언제나 내 뒤에 서 있었다.
자정만 되면… 더욱 선명하게.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영원히 혼자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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